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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menual/인생의기술[자기계발법]

[자기계발] '착하게 사는 것'이 사실은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by · DATE 2020. 7. 9.

현실의 무게감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몇 개월동안 인터넷에서 자기개발의 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물론 목적은 삶의 본질을 바꿔보기 위한 것이었으며 소량의 몇가지 내용은 이전 포스팅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뭐 특별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남들은 모르는 어떤 비밀스러운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열심히 그 비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내용 즉 자아 저 깊숙히 묻혀 있던 것들이 다시 리마인드 되는 수준이 전부였습니다.

(솔직히 전혀 새로운 내용에서 무엇인가 급변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내용이 있기를 바라고 시작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

 

열심히 정독하고 삶에 적용해보기로 하지만 그것들이 당장의 현실을 바로 바꿔주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학습으로 받아들인 지식들은 현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몇몇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당당하게 오픈하면서도 항상 덧붙이는 말은 '괜찮다'는 말이며 그 노하우가 오픈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많은 기술을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방대한 지식에 자만이 시작되지만 실행하지 않는 혹은 지속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변화 된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기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좀 더 현실적인 접근방식으로 바꿔보기로 하고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비밀스러운 내용들과 이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시 포스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나쁘게 사는 것과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

 

유년기의 시대적 상황으로 쉽게 접근했었던 전래동화 덕분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많이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콩쥐팥쥐', 흥부와놀부' 등의 전래동화는 왜 그리도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을 구분하고 더욱이 과하게 미화까지 하게 되는 넌센스적인 내용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선행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말 그대로 타인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움을 준다는 것인데,

 

무조건 예스맨이 되어서 남들보다 솔선수범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해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여 살아가는 동안에 손해를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이해의 결과였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거절하고 사악한 사람이 되자라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사악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사회적 책임을 다 한것이라 생각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물론 나쁜일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뉴스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무슨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착하게 살아라'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닌 자아를 소중히 여기고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건전한 까칠함'이 필요합니다.

 

몇가지 경험했던 부분을 기억해보면,

 

타인의 부탁은 상황에 따라 거절할 수 있지만 뭐 이까짓것 정도야 하면서 받아들였던 부탁들은 어느새 이제는 당연히 내가 받아들이기도 전에 받아들인 것이 되어 있었고,

거절하지 않는 습관은 오히려 가치없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자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지금껏 어떤 부탁에도 웃으면서 받아들였던 자신은 그 부탁을 수긍함에 따라 반영되어진 긍정적인 현실은 단 1%도 없으며,

그들은 이미 피의자가 되어 있음에도 또 다시 부탁을 하려 들고 있습니다.

 

무례함이 가능한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성공했든 그러하지 못했든 그냥 그들의 삶의 도구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친구' 또는 동행하는 자라고 칭하는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부담감이 부당함으로 변하게 되고 도움은 이미 도구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과거가 되어버린 상황은 미래에는 또 다른 방식의 과거를 만들기 위해 가끔은 까칠하게 'NO'라고 응답하며 자신을 먼저 확인해보는 것이 삶의기술 중 하나입니다.

 

이런 소위 말하는 착한사람이 아닌 '호구(Pushover)'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리고 나아가 자존감이 낮아지며 속히 말하는 '홧병(a fit of anger)의 근원이 될 수도 있으며 결국에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여 결국 폭발하기도 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남들이 부탁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양보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남들에게는 좋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자아에게는 '약자'일 뿐입니다. '선'을 행할때는 마음에서 먼저 행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돌볼줄 아는 선자가 되는 것이며, 아닌것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건전한 까칠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착하지 않은 착한사람보다는 나쁘지 않은 나쁜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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